비동일성은 서정의 동일성이 가져야 할 공리이자 모든 시적 세계의 근원적이고 숨겨진 힘이다. 비동일성을 동일성으로 전화하는 놀라운 아이러니를 겪은 뒤에야 비로소 우리에게 당도하게 되는 것이 서정이다. 이미숙 시인은 이러한 비동일성으로서의 자아와 세계와의 관계를 매우 철저하게 인식하고 이를 시적 형상화하여 보여주는 데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일련의 실험시나 (포스트) 모더니즘시만 비동일성에 바탕을 둔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견이다. 되레 서정의 세계관에 충실하면서, 그 세계관을 구축한 아이러니로서의 비동일성에 주목하는 것이 시의 긴장을 부여하고 시적 세계를 더욱 탄탄하게 하는 서정의 바탕을 만들어낼 수 있다. (⋯) 일반적으로 대상과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대상에 대한 주체의 열망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높아져 간다. 이러한 낭만적 아이러니는 시적 주체의 숭고함으로 표현되곤 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미숙 시에서는 거리에 비례한 주체의 욕망이 좌절될 것임을 단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대상에 도달하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도달하고자 하는 애씀의 과정을 고백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미 항상, 시인은 동일성이란 하나의 당위로서, 지향점으로서, 마치 당신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 가정되는 “섬”처럼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동일성은 도달할 수 없는 목적임도 인식하고 있다. — 손남훈(문학평론가, 부산대 교수)